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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이 저지른 독도 폭격사건
미국은 ‘독도는 한국땅’이라 말한바 없다
[현대사 발굴] 1948년 6월 독도폭격사건
[87호] 2008년 06월 01일 (일) 17:43:20 주강현 제주대 초빙교수, 해양문화연구소장 minjog21@minjog21.com


최근 인터넷에서는 ‘독도 괴담’도 떠돌고 있다. 한일 두 나라가 한일관계에 골칫거리인 독도를 폭파시켜 없애버리기로 했다는 식의 소문이다. 그런데 실제 해방 이후 독도는 두 차례에 걸쳐 미군 전투기에 의해 폭격 당한 적이 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독도에 얽힌 국제적 비사(秘史)를 주강현 교수로부터 들어보았다.


필리핀 북쪽의 암초인 오키노토리 섬은 더블베드 크기다. 태평양 복판 쪽으로 혀를 내민 미나미토리 섬도 산호초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들 암초에 대한 일본의 투자는 융단폭격에 가깝다.

무인도에 불과한 조어대(釣魚台), 일명 센카쿠 열도로 험난한 중일 분쟁을 야기하고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독도 역시 일본의 장기적 해양 영토전략에서 시비가 붙고 있을 뿐 우연한 독도망언이란 없다.

현실은 더 이상 녹록치 않다.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EEZ)으로 연안국에 광대한 해양관할권을 인정하는 국제해양질서가 성립된 작금의 추세는 일본의 해양력 강화에 매우 유리하다. 해양을 포함한 일본의 영토는 실로 엄청나며 우리와 비할 바가 아니다. 그러한 점에서 독도는 바둑으로 치면 일본과 맞상대하는 동해판수의 화점(花點)이다.

감성적으로야 독도를 작은 점, 손톱만한 섬이라 지칭해도 무방하겠지만 오키노토리 섬 따위와 비견하면 엄청 큰 섬이다. 유치환 시인은 울릉도조차도 심해선 밖의 한점 섬으로 묘사하였지만, 대해양시대의 역사관으로 볼 때는 매우 가깝고도 큰 섬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의 바다관이 수동적이란 증거이리라.

그런데 독도는 우리가 통념상으로 생각하듯이 단지 한일간의 문제일까. 결론부터 말한다면, 독도는 기본적으로는 한일관계이지만, 내용적으로는 한·미·일관계이다. 따라서 독도를 한일관계로만 보는 것은 사태의 일면만 보는 것이다. 시계 바늘을 1948년으로 되돌려본다. 

   
▲ 지금으로부터 60년 전인 1948년 6월, 갑작스런 미군의 폭격으로 독도에서 조업하던 수십여 명의 어민이 희생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주강현

일본과 맞상대하는 동해판수의 ‘화점’

1948년 6월 8일 화요일, 울릉도와 강원도 배들이 독도에서 고기잡이와 미역채취를 하고 있었다. 해가 중천에 뜰 무렵인 오전 11시경 비행기 소리가 났다. 지나가는 비행기겠거니 하며 어민들은 하던 일을 계속했다. 그런데 비행기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독도로 접근을 하더니, 갑자기 폭탄을 투하하였다. 뒤이어 주변 수역에서 조업하던 선박을 향하여 폭탄투하는 물론이고 기관총사격을 가하였다.

이 모든 일이 순식간에 벌어졌다. 배 위에 있던 어민들은 바다로 뛰어들었고, 독도 위에서 휴식을 취하던 어민들은 동굴로 급히 몸을 피하였다. 어떤 이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손짓을 해보았지만 헛수고였다. 이곳 저곳에서 어민들이 무참하게 죽어갔다. 팔이 잘려나가고 몸통에서 피가 솟구쳤다. 초록빛 독도바다는 피바다로 변하였다. 네 차례에 걸친 맹폭이 있은 후 비행기 한 대가 와서 유유히 한 바퀴 선회하고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요란했던 바다는 다시금 침묵의 바다로 되돌아왔지만 핏물은 여전히 번지고 있었다. 

생존자들은 다음날인 6월 9일 독도로 출어나온 배에 의해 구조되고, 전날 있었던 이 놀라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6월 9일 오후 9시경, 울릉경찰서는 구조선을 독도 현지로 급파하여 나머지 생존자와 사체 수습에 나선다. 그러나 다음날 오후 6시경에 돌아온 구조선에는 무참히 죽은 사체 2구만 실려 있었다. 이 사건은 사건 발생 이틀 뒤인 6월 10일 울릉도로 급히 달려간 기자들에 의해 6월 11일자로 보도되면서 연일 신문지상을 채우며 온 국민으로 하여금 울분과 비통함에 잠기게 하였다. 확인 결과, 폭격은 오끼나와에서 출격한 미군폭격기 B29에 의해 자행되었다. 오끼나와에서 출격한 전폭기들이 독도를 목표로 포탄을 쏟아 붇고 기관총까지 쏜 것으로 보아 저공비행했음이 분명하다. 어선임을 모를 리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군들은 ‘바다오리사냥’하듯 총질을 해댄 셈이다.  

   
▲ 독도에 새겨진 한국령각인. ⓒ주강현
그로부터 4년 뒤인 1952년 9월 15일 오전 11시경, 미 극동사령부 소속의 폭격기가 독도 상공에 다시금 출현한다. 독도를 2차례 선회한 뒤에 4개의 폭탄을 투하하고 남쪽으로 날아갔다. 당시 독도에는 20여 명의 선원과 잠녀들이 조업하고 있었으나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 마침 한국산악회의 제2차 울릉도·독도 학술조사단 일행 36명이 9월 18일 울릉도에 왔는데, 이때 재차 일어난 독도폭격사건을 듣게 되었다. 이들은 관계당국에 전문을 보내 이 소식을 전하고 조사단의 안전한 항로를 보장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런데 이들이 9월 22일 독도로 출발하여 오전 11시경 독도 부근 2km 해상에 접근하였을 때, 돌연 4대의 폭격기가 나타나서 해상에 폭탄을 투하하였다. 결국 이들은 상륙하지 못하고 화급히 울릉도로 귀환하였다.

독도가 미군 폭격지가 된 이유

정부수립 직전과 6·25전쟁 기간에 벌어진 두 개의 사건은 우연치고는 매우 복잡한 국제적 함의를 지니고 있다. 독도 폭격사건은 양민학살사건이라는 것 외에 독도 영유권 문제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일본은 독도 폭격사건을 독도영유권과 연결시키고 나선다. 당시 일본 정부와 학자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았다.

일본이 연합국의 점령관리 하에 있던 1951년 7월 6일 총사령부는 연합국 최고사령부 명령인 제2160호로써 독도를 미군의 해상 폭격연습지로 지정하였다. 1952년 4월 28일 대일강화조약이 발효되고 일본에 대한 연합국의 점령정책이 끝남에 따라 독도도 종전대로 시마네현 관할로 복귀하는 것으로 되었다. 하지만, 미군이 계속해서 독도를 폭격연습장으로 희망했기 때문에 미일행정협정에 의하여 1952년 7월 26일 열린 미일합동위원회는 주일미군이 사용한 공군 훈련구역으로 독도를 지정하게 되었다. 이를 일본 외무성은 같은 날인 7월 26일자 고시 34호를 통하여 공시하였다. 그후 1953년 3월 19일 미일합동위원회 소위원회는 독도를 미공군의 훈련구역에서 제외시켰는데 이 해제 사실 또한 외무성을 통하여 1953년 5월 14일자 고시 28호로 일반에게 공시되었다.

간단하게 말하여, 독도는 일본 국내시설 및 구역이기 때문에 훈련구역에서 지정해제되면 당연히 일본으로 반환되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는 설명이다. 이에 대하여 한국정부는 즉각 다음과 같은 내용의 외교문서로 반박한다. 

일본정부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미일합동위원화를 통해 독도가 미공군의 훈련구역으로 지정되고 제외되는 것이 바로 독도가 일본의 영토임을 전제로 내려진 조치라고 해석하는 것은 일본정부의 자의적인 해석에 불과하다. 오히려 한국정부가 미공군사령관에게 제기한 항의에 응하여, 1953년 2월 27일 미공군의 지정 작전구역에서 독도가 제외되었다는 것을 미군측이 한국정부에 공식적으로 통고해 왔다. 이는 미국이 독도를 한국의 영토로 인정하고 처리한 것임을 잘 나타내 준다.

   
▲ 독도의 경비정. ⓒ주강현

폭격사건은 미궁으로 가려졌다. 국제법학자 홍성근은 이를 파헤쳐 다음과 같은 사실을 찾아냈다. 1948년 폭격에서 폭격기 숫자는 10여 대 내외로 파악되며 사람을 식별할 수 있을 정도의 저공에서 폭탄투하와 기관총사격이 이루어졌다는 증언을 채보하였다. 최소 30척∼80여 척의 선박침몰, 최소 30∼100여 명의 어민사망으로 추정된다.

1952년 사건의 경우, 재미있는 점은 한국산악회의 독도상륙예정일이 9월 14∼15일이었는 바, 하필 9월 15일에 폭격이 이루어졌다. 일정이 늦어져서 9월 18일에야 울릉도에 도착하였으니 망정이지 모두 몰살당할 뻔하였다. 그런데 학술조사단이 독도로 상륙하고자 했던 9월 22일에 독도 부근 해상에 다시 폭격기가 나타나서 폭탄을 투하하고 사라졌다. 우연일까, 아니면 주일 미군 사령부와 일본의 은밀한 묵계에 의한 것일까.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홍성근은 “일본이 미국을 이용하여 독도를 폭격연습지로 지정하는 등의 조처를 통해 한국과의 독도영유권 문제에서 우위를 차지하려고 한 것이 아니었던가 하는 의혹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며, 일본의 고문인 윌리엄 시볼드(Wiliam J.Sebald)를 비롯한 일본의 강력한 로비에 의해 미국과의 야합이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 후에 밝혀진 자료에 의하면 그의 지적은 매우 정확했다. 일본은 미군기 폭격연습지로 지정하여 일단 한국 영토에서 빼내고 나중에 돌려 받을 속셈을 했던 것이다. 

1948년 사건으로부터 3년이 흐른 1951년 6월 8일, 독도의 서도 자갈밭 위에 경상북도 지사가 참석한 가운데 수많은 울릉도민들이 참석하여 위령비를 세웠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위령비는 누군가에 의해 쇠망치로 파손되어 물 속에 내팽겨쳐졌다. 일본인에 의한 것이었다. 홍성근은 이를 ‘조난 당한 어민들을 추모하고자 했던 비석마저 조난을 당하게 된 것이었다. 독도의 운명은 이 위령비의 운명처럼 이리 쪼이고 저리 굴리다 한낱 돌덩이로 남을 지도 모른다’고 정리한 바 있다. 

   
▲ 미군 포탄(독도박물관 소장). ⓒ주강현
   
▲ 독도 해변에 떨어진 미군 포탄. ⓒ주강현

친일파 시볼드의 국제적 농간에 놀아난 독도문제 

포츠담선언 제8항은 ‘카이로 선언의 모든 조항은 이행될 것이며, 일본국의 주권은 본주·북해도·구주·사국과 우리들이 결정하는 제 소도에 국한될 것이다’고 규정하였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제 소도에 국한될 것’이란 조항이다. 연합국 최고사령부는 지령(Scapin) 677호 3항에서 울릉도·독도·제주도를 일본 영토에서 제외하는 섬으로 명기하였으며, 위 근거에 의해 독도를 주한 미군정에 이관하였고 미군정은 이를 1946년 6월 22일 지령(Scapin) 1033호로 독도와 독도의 12해리 이내 수역에 일본 어부와 선박들의 접근을 금지한다.

그런데 1951년 샌프란스시코 강화조약 제2조 영토조항에서 ‘일본은 제주도, 거문도 및 울릉도를 포함하는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와 권한 및 청구권을 포기한다’고 규정하였다. 제2조에서 독도가 누락되었음은 큰 섬만 명기하였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가령 제주도의 마라도 같은 섬도 누락되었음에서 알 수 있다. 도대체 샌프란시스코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까.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정식명칭은 대일 평화조약이었다. 아시아태평양전쟁을 공식적으로 종결시키고 전쟁이 가져온 피해에 대한 배상을 결정하고, 연합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해 체결된 조약이다. 그 때문에 1951년에 9월에 샌프란시스코 강화회의에는 일본과 전쟁을 벌인 무려 52개국이 참가하였다.

그러나 이 강화회의에는 중화인민공화국과 타이완,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모두 초대받지 못하였다. 중국과 타이완 참가는 미국과 영국의 의견이 엇갈려서 결국은 모두 초대하지 않기로 하였으며, 한국은 ‘패전국의 식민지는 연합국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제외된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조인되던 바로 그날 미·일안전보장조약이 조인되었다. 이로써 일본은 미국이 주도하는 서방측 국제사회에 곧바로 복귀하였으나 중국 및 한국과의 관계는 개선되지 않았다. 이는 동아시아의 평화와 화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샌프란스시코 강화회의조약이 많은 문제점을 남겼음을 알 수 있게 한다.

한국으로서는 초대받지도 못한 이 문제 많은 샌프란시스코 조약 작성과정에 일본인 고문이었던 시볼드가 일본의 의사를 적극 반영시킨 것으로 보인다. ‘독도를 일본령으로 잔류시켜야 미국이 독도에 무선이나 레이다기지를 설치할 수 있다’고 시볼드가 제안한 것으로 보아, 미국은 독도 영유권에 관해 자세한 내용을 모르는 조건에서 미국의 이익만을 고려한 흔적이 발견된다. 시볼드는 1949년 11월 14일에 전문을 보내어 미 국무성에 정식 서면의견서를 제출하는데 이 의견서를 받은 미국정부는 독도를 일시적으로 제6차 초안에서 일본 영토로 명기한다. 그리고 독도와 파랑도를 명기해달라는 한국정부의 요구를 거절하는 답변서를 보내온다.

시볼드가 독도문제를 철저하게 일본 입장에서 유리하게 풀어나간 점은 신용하를 비롯한 여러 논문에서 지적되었지만 정작 그가 어떤 인물인가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행히 정병준 같은 현대사 연구자에 의해 시볼드가 독도분쟁의 시발점을 마련했다는 중요한 연구 진척이 이루어졌다.

시볼드는 해군장교 출신으로 1925∼28년 일본에서 미해군 일본어코스를 거쳤으며, 그의 일본계 부인은 모친이 일본인 화가, 부친은 영국인 법률가였다. 시볼드는 장인과 고베에서 법률회사를 운영하기도 했다.

전쟁이 끝나고 별스런 경력이 없던 그는 ‘맥아더 장학생’으로 주일 미정치고문대리로 임명되었으며 외교관 경력이 없던 그였기에 미 국무부 뿐아니라 소련 언론에서도 논란을 일으켰다. 시볼드는 일본에 완벽하게 매료되어 지일(知日) 정도가 아니라 친일적 인물이었다. 전범들과도 폭넓게 교류하였으며 한국을 6차례나 방문한 기억을 서술하면서, ‘한국에 대한 나의 인상은 슬프고, 억압받고, 불행하고, 가난하고, 조용하며, 음울한 민족’이라는 식의 악의로 일관하였다. 

   
▲ 국립해양조사원이 작성한 동해 3차원 영상도(왼쪽이 울릉도 오른쪽 솟은 섬이 독도).

독도 문제에 대해 일본 입장 지지해온 미국

패전국 일본은 강화회의에 대비하여 평화조약문제연구간사회를 외무성 산하에 설치하고 일본의 영토를 최대한 확보하고자 광분하였다. 당시에 영토문제의 핵심은 오키나와, 홋카이도, 오가사와라 등이었는데, 이를 위하여 조약이론에 밝은 외무성 조약국의 가와카미 겐조가 상세 보고서를 작성하였다. 가와카미는 일본 외무성조약국관료로 독도를 일본영토임을 주장하기 위해 외무성이 1953년에 발행한 《독도 영유(獨島の領有)》의 집필자였으며, 일본측 주장의 바이블같은 ‘죽도의 역사지리학적 연구’의 저자였으니 가와카미의 손길이 전후 독도문제에 강력하게 뻗쳐있음을 알수 있다.

평화회담 초안에서 영국은 독도를 일본령으로 기록했다가 한국령임을 정확히 인식하고 정정한 사실이 있다. 잘 알려진 대로 미 국무부가 대일강화조약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초기의 작성된 1∼5차까지의 초안에는 독도가 한국령으로 기술되어 있었다. 그런데 시볼드는 이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하는 과정에서 ‘독도는 일본령’이라 주장한다. 일본의 강력한 로비와 시볼드 자신의 열렬한 친일적 자세로 말미암아 1950년 7월에 작성된 대일평화조약 초안에 대한 논평에는 다음 구절이 첨부되었다.

“울릉도와는 달리 다케시마는 한국 명칭이 없으며 한국이 그 권리를 주장해본 바가 없다. 그 섬은 점령기간에 미군의 폭격연습장으로 사용되어 왔으며, 기상관측소 및 레이더 관측소 기지로 사용될 수 있는 가치가 있다.”

시볼드의 논리는 가와카미가 제출한 자료의 복사판이다. 울릉도만 이름이 있어 왔고 독도는 지도에도 나타나지 않고 이름도 없었다는 주장은 명백한 허위였다. 그러나 당시에 한국은 이러한 사태진행조차 몰랐고 막을 힘도 없었다. 일본은 자신의 나라도 아닌 오키나와를 미군기지로 조차시켜 놓아 훗날 자신들의 영토로 환원시켰으며, 독도도 같은 방식으로 미공군 폭격연습장으로 내주어 훗날 돌려 받을 작정을 하였다.

시볼드의 이력을 발굴한 정병준의 표현대로, 시볼드는 일본에게는 ‘행운’이었으며 우리에게는 ‘불행’ 그 자체였다. 미국이 독도문제에 관한 한 일본의 입장을 지지한 것은 이같은 역사적 배경에서 가능했다.

천만다행은 다른 연합국들이 미국의 수정안, 즉 독도를 일본 영토에 포함시키려는 미국(및 일본)의 시도를 저지시켰다. 뉴질랜드와 영국이 미국의 ‘수정’에 동의하지 않자 독도를 일본 영토에도 넣지 않고, 한국 영토 조항에도 넣지 않아 독도라는 이름을 아예 연합국의 대일본 강화조약 모두에게 빼어버리고 만다.

샌프란시스코조약에 한국은 제 3자였기에 이러한 일로 인하여 독도의 한반도 영토임이 훼손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두고두고 빌미를 주게 된다. 이처럼 독도문제에는 한·일만이 아니라 한·미·일 변수가  숨어있는 것이다. 미국은 분명히 ‘독도는 일본령’이라고 일본을 지지하였다. 미국은 결코 ‘독도는 한국령’이라고 말한 바가 한번도 없다.   

그렇다면, 오늘의 미국은 독도문제에 대하여 어떤 입장을 취할까. 오늘날도 당연히 일본 입장을 지지한다. 한일간의 첨예한 문제에서 미국은 늘 일본에 점수를 더 주었다. 불행하게도 한국의 친미파는 이 점은 간과하고 ‘혈맹론’에 목을 매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자신들의 발언이 매우 거친 풍파를 일으킬 수 있음을 뒤늦게 알아차린다. 독도문제가 단순하게 한일문제에서 그침이 아니라 한미문제의 아킬레스까지 건드릴 수 있는 뇌관이 될 수 있음을. 즉  잘못하면 반미감정 폭발이란 후폭풍을 불러올 수  있음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속마음은 털어놓지 못한 채 어정쩡한 중립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물론 그 중립은 당연히 일본에 기울어 있는 중립일 것이다. 혹시나, 속마음은 이런 것 아닐까. ‘까짓, 독도, 일본에 줘 버려! 아니면, 같이 쓰던지!’

천년대계의 해양력 설계, 독도 수호에 달려 있어

1880년 북경조약으로 두만강 녹둔도가 러시아로, 간도협약으로 간도가 중국에 넘어 갔다. 동북공정으로 고구려와 발해사가 초미의 관심인데 일본은 기회만 있으면 독도망언을 내뱉는다. 지극히 조직적인 정치적 망언이라 치고 빠지기 수준을 뛰어넘는데, 우리에게 독도는 아직도 ‘머나먼 당신’이다.

미국의 책임있는 인사들은 결코 독도를 한국의 섬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일본의 섬이라도 말하지 않는다. 이 무언의 어중간한 답변을 하면서, 왕왕 ‘독도는 한국 것이라는 결정적 증거가 없네요’ 식의 발언을 해대고 있다. 보편적 미국인들이 지니고 있는 독도에 대한 인식이 그렇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독도문제를 잘 모르거니와 아는 이들조차 ‘다케시마’라고 부르는 이들이 다수다.  

해군 전략이론가이자 19세기의 가장 뛰어난 해군 역사가인 마한(기실 내용적으로는 제국해군의 이론가였던)이 “해양력이야말로 역사의 진로와 국가 번영을 이루는 중요한 고리이다”라고 하였을 때, 독도는 우리의 해양력을 시험하는 잣대임이 분명하다. 러일전쟁터가 독도 근해였음은 제국의 각축이 언젠가 다시금 독도에서 재현될 수 있음을 시사해 준다. 일본 자위대의 무력 위협이 현실화되는 동해판수의 화점에서 우리는 바둑돌을 어떻게 놓을 것인가. 그야말로 천년대계의 해양력을 설계할 일이다.


주강현(52) 현재 한국해양연구소 소장, 한국역사민속학회 회장, 한국민속연구소장, 문화재 위원 등을 맡고 있다. 8년이 넘게 한국해양문화재단 이사, 《해양문화》편집주간을 맡아 바다 사랑운동에 앞장 서 왔다. 지금까지 40여권의 책을 지어 검증을 받은 저술자다. 그 가운데 《우리 문화의 수수께끼 1,2》는 지금까지 35만권 이상이 팔린 장기 베스트셀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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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は黙っていないぞ!
(114.XXX.XXX.56)
2012-09-06 23:21:19
日本固有の領土である竹島を返せ!!!不法占拠して実行支配している韓国人は罪だ!
234
早く竹島を返せよ!!
(114.XXX.XXX.56)
2012-09-02 11:04:42
竹島は島根県のものであり、日本固有の領土であること。竹島を早く返せよ!朝鮮人は不法入国だ!逮捕扱いだぞ!
日本
日本
(114.XXX.XXX.56)
2012-09-02 04:32:14
不法入国者である韓国人は糞だろ。何言ってんだよ!韓国人!
日本
日本
(114.XXX.XXX.56)
2012-09-01 18:12:53
島根県竹島 日本固有の領土 長崎県にある対馬も日本固有の領土であり不法入国はやめなさい!逮捕扱いです
JAPAN!
日本
(114.XXX.XXX.56)
2012-09-01 18:08:39
ニッポン!ニッポンー!ニッポン!ニッポン!ニッポン!ヘイ!ヘイ!ヘイヘイ!国際司法裁判所が解決します
日本
竹島を返せ!!!!!!
(114.XXX.XXX.56)
2012-09-01 18:06:43
韓国人は日本固有の領土、長崎県対馬・島根県竹島から出て行け!!!日本固有の領土だ!いい加減にしろ!天皇陛下に謝罪しろ!
日本
頑張れ!日本!
(114.XXX.XXX.56)
2012-09-01 18:04:34
日本の島根県竹島。 日本の長崎県対馬  韓国人に盗まれようとしています。 韓国人は日本から出て行け!!
日本
島根県竹島
(114.XXX.XXX.56)
2012-09-01 18:00:38
島根県竹島は日本固有の領土であり、アメリカ側も認めており歴史的・国際法上でも日本固有の領土です
日本
長崎県対馬は日本
(114.XXX.XXX.56)
2012-09-01 17:58:43
シマネケン・タケシマ・ナガサキケンツシマは日本固有のリョウド
ニッポン!頑張れ!マケルナ!
竹島返せ!日本固有の領土だ!
(114.XXX.XXX.56)
2012-09-01 17:56:30
韓国による竹島の不法占拠  島根県竹島は日本固有の領土。 タケシマニホンコユウノリョウド
ガンバロウ!ニッポン!
頑張れ!日本!
(114.XXX.XXX.56)
2012-09-01 15:53:50
日本!日本!日本!頑張れ日本!頑張れ日本!韓国の大統領は天皇陛下に謝罪しろ!
島根県竹島は日本固有の領土であり、このページは日本のものであります。
頑張れ!日本!
(114.XXX.XXX.56)
2012-09-01 15:50:44
頑張れ日本!すごいぞ!日本!頭のいい国日本!美しく高く飛べ!日本のヒーロー竹島返せデモ対!野田総理!
日本
TAKESIMAv JPAN
(114.XXX.XXX.56)
2012-09-01 15:48:46
simane takesima JAPAN! 島根県竹島 長崎県対馬 沖縄県尖閣諸島 北海道  頑張れ!日本!
韓国の大統領は天皇兵かに
(114.XXX.XXX.56)
2012-09-01 15:46:24
世界一嫌われている韓国人は日本固有の領土、竹島を返せ!!!長崎県対馬に気持悪い韓国の建物を建てるな!!!!!!!!日本固有の領土だ!
うぇ
韓国人は日本から出て行け
(114.XXX.XXX.56)
2012-09-01 15:44:41
竹島は日本固有の領土であり、韓国人が馬鹿な教育を受けていることは韓国人は分かってないのです!
竹島を返せ!!!!!
(114.XXX.XXX.56)
2012-09-01 15:27:32
二度と竹島を含む日本に近寄るな!韓国人容疑者は天皇陛下に謝罪しろ!韓国人は日本から出て行け!!!!!!世界の嫌われ者!韓国人は近寄るな!
12
韓国は世界から嫌われてい
(114.XXX.XXX.56)
2012-09-01 15:24:47
韓国人のやっている行為は逮捕扱いだぞ!!不法入国をやめてください!長崎県対馬を汚すな!
韓国馬鹿!韓国消えろ!
竹島は国際法、歴史
(114.XXX.XXX.56)
2012-09-01 10:10:24
韓国による竹島の占拠は国際上何ら根拠がないまま行なわれている不法占拠であり韓国がこのような不法占拠に基づいて竹島に対して行いかいなる措置も法的な正ঈ
日本
TAKESIMはjapan固有の領土だ!
(114.XXX.XXX.56)
2012-09-01 10:03:35
島根県・竹島は歴史事情に照らしても、かつ国際法上も明らかに我が国固有の領土です。
日本固有の領土
TAKESIMA japan!
(114.XXX.XXX.56)
2012-09-01 09:57:15
韓国人は日本固有の領土を盗もうとしたり日本を馬鹿にしているため犯罪行為であり逮捕扱いだ!今すぐ日本の天皇陛下に謝れ!
韓国人んは今すぐ国際司法裁判所に行け!
TAKESIMA JAPAN
(114.XXX.XXX.56)
2012-08-31 21:24:13
日本固有の領土だ!韓国に竹島は渡さない!韓国は諦めろ!
韓国人は国際司法裁判所だぞ!
韓国人を日本から追い出せ
(114.XXX.XXX.56)
2012-08-31 21:11:38
島根県・竹島!
島根県・竹島

韓国に大地震をお願いします!!!!!!!!

韓国の大統領は今すぐ日本の天皇陛下に謝罪しろ!

日本固有の領土である竹島に勝手に上陸した韓国人は逮捕扱いだぞ!
韓国人を国際司法裁
(114.XXX.XXX.56)
2012-08-31 21:07:19
竹島は歴史的にも固有的にも日本固有の領土であり韓国人が実効的に支配しているのは韓国側は国際司法裁判所へ
竹島を含める日本固有の領土に二度と近寄るな!

竹島は日本固有の領土だぞ!!

対馬は日本固有の領土だ!

韓国人は日本を適とする教育を受けており「独島は我が領土」などキモィ歌を売ったっている

これは日本でも放送された

日本の怒りは止まらない!

竹島は歴史的にも国際法でも日本固有の領土です!

サンフランシスコ平和条約でも決まっています!
竹島は日本固有の領土!
(114.XXX.XXX.56)
2012-08-31 21:02:45
日本固有の領土、対馬・竹島!
竹島は日本固有の領土だ!!!!!

島根県・竹島 日本固有の領土!


勝手に竹島を盗むんじゃねえ!

竹島を返せ!

実行支配をしているだけの韓国はアホナ教育を受けているだけ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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